싱가포르에서 엿새를 보내면서 든 우리에 대한 생각.
종종 주위의 한국인들의 무례한 행위로 내가 한국인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마지막 날 한 번 더 일어났습니다. 바로 Red Dot Design Museum에서였습니다. 그 곳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기도 하여 절대 정숙이 요구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 제품은 인터랙션을 통해 그 가치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촬영도 적극적으로 허용되고 말이죠. 하지만, 있는 물건 없는 물건 다 만저보고 툭툭 쳐보고 이건 어디 쓰리고 한 거야? 저건 뭐야? 색깔이 왜 이래? 뭐라고 써 놓은 거야? – 동네 백화점 세일 기간에 몰려다니며 기본적인 예의는 집에다 모셔놓고 이 상품 저 상품 툭툭 건드리고는 아무 곳에나 집어 던져 놓고, 점원들에게 반말로 일관하면서 마치 옛시절 종부리듯 하는 아줌마 무리 같았습니다. 공교롭게 그 무리도 같은 性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 부끄러웠습니다. 그 무리가 지나가는 곳마다 설치되어 있던 제품들이 (천장 고정으로 매달려 있던 것들은) 전후좌우로 진자운동을 하였고 (반짝 반짝 닦아 놓은 것에는)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버렸습니다.
흔희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보면 애국심이 생긴하고 합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정말 그게 사실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전 외국 체류에 보낸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이 고작 보름 남짓이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 삼사일 바다 건너갔던 사람도 민족과 국가와 역사와 현시점에서의 국가 발전상과 미래를 위해 정부가 (이런 일장연설에서는 절대 ‘화자’를 포함한 우리가 아님이 특이합니다, 정부가 뭘 해야한답니다) 무엇을 당장해야 한다고 들먹이는 것 보면, 무슨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 같습니다. 입출국장에 공기 중으로 살포하는 약품이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 이야기합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예의없고 시끄러워서 가까이 하기 싫다고. 서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며칠전 Singapore Flyer 속에서 만난 중국계 가족에게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어떠할까요?
미안하지만, 며칠 전 모 상점에서 점원이 한국어로 인사했습니다. 얼굴로 국적을 알아보다니 대단한 식별력입니다. 전 영어로 인사했습니다. 영어만 썼습니다. 앞에 한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대단한 일을 벌이면서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Singapore Flyer의 중국계 가족과 다를 바가 없을 뿐더라, 그 중국계 가족은 미친듯 뛰어놀 시기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대단한 한국인 무리는 모두 성인이었습니다.
여기 싱가포르에서도 한국의 자취를 심심하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TV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고, 즐비한 쇼핑몰에서는 일본어로 된 노래보다 한국 아이돌이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를 더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급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주문 중에 서로 애매한 순간이 오면 웨이터는 한국어 보통명사를 꺼내어 주문을 마치고자 노력합니다. Singlish, 만다린어 다음으로 한국어로 물어옵니다.
대로에는 한국 기업의 간판을 볼 수 있으며, 비록 택시이기는 하지만, 한국산 차가 거리를 수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쳐지나가는 한국인들은 과연 이런 위상에 걸 맞을까 – 생각해 봅니다. 중국어는 대체로 소란스럽습니다. 언어자체가 그러하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어나 일본어는 비슷한 소리대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표에 그려넣으면 한국어나 일본어는 오선 중 가장 아래 밑 도에서 파 정도에 머물고 중국어는 한 옥타브가 높다는 생각입니다. 아 근데 왜 한국어 관광객들의 목소리를 중국인 무리들 보다 먼저 알아차릴까요? 한국어 사용 무리는 더 멀리있는데. 단순히 모국어에 귀가 쫑끗해지는 태생적 반응일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가 단일 공식어이고 영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환경의 지역에 가면 한국인들 정말 조용합니다. 물론 정확한 수치적 통계도 아니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조사 및 분석한 것이 아니라, 저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에 객관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저의 느낌을 전 사실로 굳히고 싶습니다.
불필요한 문화적 열등감과 더 불필요한 문화적 우월감이 한 번에 교차된다고 전 분석하고 있습니다. 둘 다 매립해버리거나 소각해버려야 하는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같은 것입니다.
한국인임이 떳떳하여 어떤 가치보다 바꿀 수 없는 자랑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다간 세상만사 심각히 어려워집니다, 20세기 두번의 큰 전쟁으로 우리는 그 부작용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임이 부끄럽고 들키고 싶지 아니한 느낌이라면 이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라는 가치가 다른 문화와 만나게 되면, 마치 80년대 강남개발로 졸부가 된 무지랭이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요? 제가 밖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딱 졸부 느낌입니다.
다른 문화에 주눅들 필요가 없는 것처럼, 다른 문화를 천대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문화는 가치가 있는 인류의 유산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없을 것이다며 입 닫아버리고 시선을 피할 필요가 없듯이, 내가 하는 말을 타인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마구 떠들어 댈 필요도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음식점 같은 곳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점원들은, 하지만, 말 안 통할 것이다라고 미리 단정짓고, 입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 금액이 표시된 숫자만 보여주고 딴청을 부립니다. 참 안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만 사용하더라고 친절을 표하면 상대는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친철을 배풀고 인사를 하고 안내를 하면서 깍듯했던 한 일본음식 점의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싱가포르 커피점의 젊은 매니저가 생각납니다.
어떤 무언가가 변화해야 한다고 느껴진다면, 흔희 우리들은 '법'과 '제도'와 '정치'와 '가진 자들의 행위'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실, 변화가 필요하다 느껴졌을 때 느낀 자부터 변하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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