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앞에도 뒤에도 차가 없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여유있게 찍은 것입니다. 정면 주시하고 전화기를 계기판에 밀어 넣어 찍는다고 뭐 잘 찍히지는 못 했습니다. 나름 안전을 생각한다고 한 행위이지만, 이 행위는 시작부터 잘 못 된 것이니 할 말은 없습니다. :-(
그나저나 5년 동안 실내세차 1회라는 기록이 반영되고 있군요. 더럽습니다.
내 차는 계기판이 말해 주듯 SM3입니다. VW Golf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오다가 이제는 실행에 옮겨야 할 때이다 - 라고 마음을 먹는 순간, 지금의 차가 스스로 튜닝이라도 한 듯 신차의 성능을 냅니다. 참 고민이 됩니다. 이 녀석이 내 마음을 읽는 무기체인지는 모르겠으나, 차 한 번 잘 만들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연비도 신차에 가깝고, 성능도 기대 이상(신형 쏘나타와 경쟁 가능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이유? 모르겠습니다. 혹시 수동이라서?)이며 나머지 어떤 것도 10만 킬로미터를 주행한 차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VW Golf를 보게되면 가슴이 뭉클 두근 욱씩거립니다.
- 뭉클: 사춘기 때부터 정말 가지고 싶은 차이기 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 두근: 나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Dream Come True!
- 욱씬: '가능성' 이전에 이성적 판단을 해 보면 사서는 아니되기에; 이 연결성 부족한 결론 도출은 마치, '사랑하기에 떠나보낸다'라는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마음으로 읽히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과 같다.
오늘 고속도로 진입직전 만난 저 차는 무엇일까요? 새 차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의 계절입니다. 사람이 관심을 한 군데 가지면 그 대상과 그 주변이 무척 대단하고 크게 보이는 법이죠.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하여 항상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ThinkPad T410의 터치패드 모습입니다. (더럽군요)
ThinkPad T43의 터치패드 모습입니다. (더럽습니다)
디자인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지요? 신형인 전자는 팝파랫과 터치패드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후자는 터치패드가 조금 아래로 들어간 모습입니다. 이게 무슨 차이를 만들까요?
타이핑을 하거나 '빨콩(트랙포인트)'을 다룰 때 손바닥이 터치패드를 눌러 입력을 간섭하는 것을 T43은 방지할 수 있고, T410은 그렇지 않다 - 라는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회사에서 받은 T410. 아직 집에서 현역 생활을 하고 있는 T43.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아내는 T410. 몇 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사랑스러운 T43. 너무도 사소한 부분인 것 같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엔지니어링에 무지한 산업 디자인은 이렇게 실패하고 그 반대는 저렇게 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죠.
사실 이쁘게 만들기 위해 기술적인 요소를 무시하거나 편리를 포기하는 경우는 Apple의 제품에서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친 언어를 포함하여 이 발언에 대하여 심각한 비난을 할지 모르겠지만, 진실입니다 :P 언제 시간이 허락되면 연제를 하고 싶은 마음도... (후훗)
음... 아무튼, 이 말은 하고 싶은데, ThinkPad의 '빨콩'은 인류가 고안해 낸 많은 전산입력 장치 중에 버금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으뜸상은? 전 키보드라고 생각합니다. 마우스? 글세요... 마우스는 대체 가능한 유사 기술이 많고 그 중에 하나가 '빨콩'인지라...
(다시)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하여 항상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Ubuntu 11.04를 설치했습니다. 회사에서 Big Brother의 쁘락치를 지울 수 없게 설치(이럴 땐 속어인 '깔아놓았다'가 제격인 듯)해 둔 Windows 7 체제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과 업무 특성 상 Microsoft Office는 OpenOffice.org로 대체 가능하고, Microsoft Internet는 안써도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T410을 받기 전에 쓰던 Lifebook은 Ubuntu로 Solaris로 지속적인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아... 설치 과정에서 보여는 화면조차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 ~ ~ ~ ~ 그리고 딱 3일을 동거했습니다. Lifebook의 마지막 OS 버전이었던 Ubuntu 10.10으로 다시 설치했습니다. Canonical에서 Unity라는 GUI Shell을 Ubuntu 11.04에 넣었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엇이든 '아름답다고' 모든 게 용서되지 않습니다. 춘기발동기 인간 수컷들이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Unity Shell은 여름 한 철 농약 한 번 안뿌리고 방치한 사과농장 같았습니다. 유기농도 좋지만, 사람이 먹을 만한 걸 수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양각색의 버그들이 구석구석 집을 짓고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그래서, Unity를 무시하고 Gnome 3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 이 마음이 싹트는 시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후회로 보상되지 않는 아픔이 찾아왔더랬습니다. 지금은 Ubuntu 10.10으로 재설치하여 안도와 안락을 동시에 맛 보고 있습니다.
Ubuntu를 내 취향에 맞게 최적화를 하고 이것저것 네트워크를 뒤져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쓰던 IME의 이름도 잊어버려 허우적 거리다가 한국어 입력 등에 대하여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참 이상한 반응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용자가 '한자'입력의 불편함등에 대하여 적은 글의 대수의 반응은 '중국어 입력기를 쓰세요'였습니다. 아니 이건 뭐라고 해야할지. 그리고 한 배포판의 기본 서체에서 한자를 무조건 한글발음으로 바꾸어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자 대다수의 반응은 '한자는 청산해야할 사대주의', '한글만세' 였습니다. 어이쿠...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이들은 대부분 '한글'과 '한국어'도 구분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이 땅의 이 순간이, 과장된 혼돈과 무질서적인 가치혼란을 조장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사회·정치적 운동에 줏대없는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영합하는 결과, 우리가 아닌 너와 나로 구분되는 사고의 판단이 요구된다지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눈이 침침한데, 안경은 도체 어디둔거지?
안정화된 Ubuntu에 LaTeX는 더이상 '삽질'하지 않아도 Ko.TeX 패키지까지 순탄히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LaTeX로 이력서를 새로이 적는데, 옛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렇게 견고하고 아름다운 마크업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이름없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해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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