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보드를 좋아한다. 국민학생 때 키보드는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 같은 것이었다. 키보드는 필기구와 같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나에게 맞는 멋진 키보드는 고르는 일은 피천득의 만년필 감별과 같은 품위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도 나와 같았다. 그래서 감명받은 키보드를 그에게 부쳐주었고, 그도 자신의 감명을 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전달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는 타국 낯선 도시에서 근무하였기에 우리는 아주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함께 마신 커피가 더 많을 것이다. 그와 나는 많은 나이 차가 있었지만, 친구 같은 분위기에 웃으며 가볍고 흔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 갔다 - 가령 안드로이드가 업데이트 되면서 미친 듯한 연사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접하며, 아이폰도 iOS 7이 되면서 달라졌다는 실증을 한다든지.
그는 자신의 진로와 선택의 문제가 생겼을 때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의 조언이 그의 인생을 값지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복잡한 머리 속을 말로 풀어낼 대상이 나였다는 것에 참 고마웠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흔한 주제로 만들었고, 그는 곧 귀국할 계획이라고 했다, 일이 잘 풀린다면.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되는 일이 없었다. 어제도 그랬다. 무언가 할 일이 잔뜩 있는데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내가 못 마땅하기도 했다. 시험기간에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책상정리처럼 느지막한 오후부터 이 키보드 저 키보드를 꺼내어 내 손가락 끝이 기억하는 감각과 내 머리가 기억하는 감각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두 기억이 가장 근접한, 그의 키보드를 책상 위에 두었다.
보통의 월요일이 다 그렇지만, 오늘도 보통의 다른 요일보다 뭔가 잘 못 된 기분이 들었다. 신호등은 항상 내 앞에서 바뀌었고, 미친듯이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버스들과 트럭들에 적당히 화도 났다. 조금 늦게 일어난 탓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료도로는 돈 값을 못 했고, 회사 주차장에 좋은 자리는커녕 내 차 하나 적당히 둘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매니저와의 미팅에 늦게 되었고, 예상과 다름없이 좋은 소식은 하나 없었다. 아무래도 나의 겨울은 길고 몹시 힘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질 것이 뻔한 경쟁에 윗분들 욕심으로 제안서를 준비해야 하는 허망함이 내 머리를 점령했다.
거의 모두가 퇴근한 시각,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회의는 방향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되게 하려 한다 하여 될 수도 없는 것에 인생의 며칠을 낭비해야 하는 우리 모두는 어두웠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그는 이제 서른을 넘기고 조금 살았다. 너무 착했던 그는 나에게 좀 다부지게 조금 독하게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대체로 성실했고, 대부분 웃는 모습이었다. 전화를 하고 있어도 표정이 보이는, 문자 메시지에 마음 상태가 느껴지는 그런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는 올해가 지나면 귀국 하겠노라 말했다. 그래서 술 잔 아래 고기 굽자고 했다.
그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가, 오늘 아침 낯선 도시에서 차 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말투에서 나쁜 소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와 친했냐는 말에 그의 불행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충격 받지 말고 잘 들어라는 말에 그에게 너무 큰 불행이 닥친 건 아닐까? 먼저 걱정했다. 하지만, 내가 직전에 한 걱정은 그 범위가 너무도 좁아서 대비가 되지 못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몇 초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가 죽었다고 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한 문장을 듣고는 현기증이 느껴졌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경위를 설명해 주었던 것 같은데, 나는 같은 문장 같은 단어로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의 고향이 어디이고 부모님은 어디 사신다고.
한 시간 즈음 뒤, 그 도시에 사는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들어서 기억하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전화 받은 사람에게 전후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길었다. 서너 번 흐느낌 없는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난 속도를 줄여야 했지만, 차를 멈출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던 대전의 한 거리가 이어 붙인 필름처럼 계속 뇌리를 돌고 돌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내 친구 하나는 신해철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몇 시간 전,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난 2014년 10월 27일을 세상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굿바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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