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다. 한 번의 작은 사고를 목격했고, 한 번의 큰 사고를 비켜갔다. 그리고 주차장 같은 도로를 벗어나 휴게소에 들렸다. 편의점이었다. 걷는 것과 손을 사용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이는 엄마가 세살은 되었을까? 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들어왔다. 아이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엄마는 우유를 하나 샀고 계산대에서 빨대를 받았다. 작고 예의 없는 비닐 포장을 빨대에서 벗겨내지 못 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엄마도 곧 울것만 같았다. 계산대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손을 뻗으며 한 걸음 다가 갔을 때 계산대에 있던 점원이 그 예의 없는 포장을 벗겨 없애 주었다. 모자는 걸어 나갔고, 엄마는 아이 아빠를 소리쳐 찾았다.
난 순간 밀려오는 슬픔이 혹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뒤흔들었다. 행색이 엉망이었던 그 모자는 남편을 아빠를 찾아 다시 가던 길을 갔을까? 목적지는 어떤 곳일까? 왜 아이는 목이 쉬고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울고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슬프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왜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었을까? 왜 아직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까?
차로 돌아왔을 때, 몇 시간 전 부동산 업자에게 화냈던 내가 옹졸하게 느껴졌다.
12시간 전,
오늘은 회사가 운영하는 한 공장으로 가야 하는 날이었다. 어르신들이 동네 산책을 시작할 무렵 난 잠에 들었다 일어나, 머리를 감으며 수면과 기상의 경계에서 휘청거렸다. 그렇게 집을 나서려는 순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사는 전셋집을 사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이사 나갈 수 있느냐? 라는 문의였다. 계약기간의 겨우 절반 정도 산 나로서는 그리고 임대 시장이 개박살난 이 시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소리내어 웃었다. 참 예의가 없었다. ‘이사비를 줄 게요' 그 이사비는 보잘것 없었다. 만약 집을 못 빼면 전출 신고라도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보증금 중에 1/3을 먼저 드릴게요' 그것은 그들의 돈이 아니라 내 돈이고, 그저 미리 주겠다는 것이고, 전출 신고를 해 달라는 건 나의 법적인 임대계약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난 또 웃다가 욕 하지 않고 화를 냈다. ‘어차피 계약 끝나면 나가셔야 하니까, 조금 일찍 나가달라는 것 뿐이에요' 난 이 말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넌 네 인생의 절반 이상 살았고 어차피 죽을 건데 지금 죽는 건 어떠냐?’ 라고 짓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매의향이 있다는 솜털 뽀송뽀송한 부부와 부동산 업자에게 영원한 저주를 걸 수 있다면 내 남은 수명의 절반이라도 바치고 싶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시질 않았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도 한 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도 약속에는 늦지 말아야지’ 난 하릴없이 핸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도로는 더럽게 막혔고, 오디오에서 나오는 어떤 음악도 내 마음을 진정 시키지 못 했다.
‘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18시간 전,
지난 새벽 외국어로만 가득한 회의가 몇 건 그래서 몇 시간을 걸쳐 계속되었다. 커피를 들이키며 졸음을 쫓으며 지구 저 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그 시각이면 한국어도 서울어도 부산어도 어떤 말도 제대로 못 할 것인데, 외국어로 이 모든 것을 하려니 혀가 제대로 놀려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났지만,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 하고 생각에 잠겼다.
난 어디 즈음에 있는 걸까? 지난 몇 년 간 난 내 생명을 태워내며 일하는 느낌이다. 힘에 부친다. 이건 나의 젊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내 능력에 의심이 생겨서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근원을 가진 불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안. 그 끝없는 구렁텅이에 매 순간 굴러 떨어진다. 해가 뜰 것 같은 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지난 하루, 난 뜻하지 않게 많은 감정을 소모하며 영혼에 상처를 내었다, 아까징끼라도 바르고 대일밴드라도 붙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낫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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